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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TV] 제2의 공씨책방 수두룩…개발 광풍에 사라지는 서울 미래유산들

"세 살에 내가 못 보게 됐잖아... 9살부터 역학을 배워서 14살부터 지금까지 61년간 점을 본 거야."

낡은 초가집에서 아직 맹인이 느릿느릿 점을 본다. 시각장애인 이수남(75) 역학사는 점을 본 지 올해로 61년 째다. 초가집 안에는 점을 보는 2평의 공간과 부부 침실이 있다. 가끔 일본, 중국인들이 찾아와 점을 본다고 한다. 그는 머릿속으로 온갖 주역 점을 암기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60년 넘게 이어온 생업을 접어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역학사의 생활 터전이 자리한 이곳은 서울시 성북구 미아리고개 점성촌. 바로 옆에서는 주택재개발사업이 지정돼 조합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젊은 나이에 이걸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어요. 점심 먹는데 우리 어머니가 망치질하면서 팔이 떨리시더라고요. 거기서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공씨책방처럼) 이슈가 되면 서울시에서 관심도 가져주지만, 이슈가 안되면 그냥 사라져버리잖아요"

어머니 대신 망치를 잡은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아파트가 지어질 재개발구역 앞에서 박상범 사장은 아버지와 함께 대장간을 운영 중이다. 아버지는 60년 넘게 메질(쇠를 불에 달궈 두드리는 작업)을 했다. 큰돈을 만지기는 어려웠다. 불광대장간 부자는 현재 불광역 인근 2층 건물 귀퉁이에 세를 얻어 메질한다.

◇개발과 보호 '오락가락'…미래유산 둘러싼 엇갈린 정책들

서울에는 2017년 12월 기준 총 386개의 유형의 미래유산이 있다. 동시에 서울시의 도시계획 정비사업 구역은 총 536개다. 미래유산 절반 이상이 정비사업 내에 속하거나 영향권에 포함됐다. 뉴스1 뉴미디어랩에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서울시 지도 위에 매핑해본 결과 미래유산 절반 이상이 정비사업구역 내에 속하거나 영향권에 포함됐다. 실제로 미래유산 중 31개는 주택재개발사업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 안에 있다.

(지도)
지도에서 보면 파란 원은 도시정비구역, 빨간 점들은 미래유산이며, 노란 점은 인접 구역(위험 지역)이다. 클릭하면 지명과 사업명을 알 수 있다.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대부분 미래유산이 있는 곳은 노후화된 주거환경에 위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도시계획지역과 겹칠 수밖에 없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화동 낙산 국민주택단지, 동소문2가동 한옥밀집지역, 금강헤어라인, 윤중식 가옥 등이 이에 속했다. 이들은 재개발사업 중에서도 사업계획의 변경이 어려운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인가'에 속해있어 심의를 돌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북정마을, 백사마을, 일광방앗간 등 7개의 미래유산은 재개발사업구역에 지정됐지만 아직 시공사가 선정되지는 않았다.

◇ 수리로는 부족… 멸실 방지할 최소한의 법적 장치 고민해야

공씨책방 등으로 미래유산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서울시에서는 환경이 열악한 미래유산을 보수, 홍보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지원자를 대상으로 1곳당 최대 1500만원의 수리비용을 지원하고 1사(社) 1 유산 매칭을 시도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수리와 홍보는 임시적이며 기업 매칭은 자발적인 기업의 후원이 아니면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미래유산 중 일부는 보호할 수 있게끔 최소한의 법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로서는 건물주가 미래유산이 있는 집을 재건축하면 미래유산을 살릴 방법은 사실상 없다. 미래유산 조례에 따르면 미래유산은 소유자가 자발적으로 보존할 뿐 훼손에 대한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미래유산에 대해 보다 촘촘한 대책이 필요하다 주장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미래유산도 등록문화유산보다는 등급이 낮지만 어느 정도 재산 보존의 의무 혹은 세제 혜택을 주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최소한의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 조언했다. 신창희 한국외대 글로컬창의산업연구센터 연구원은 "미래유산을 전부 매입할 수는 없지만, 선별적으로 매입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겨울 공씨책방이 서울장수막걸리의 도움을 받아 소생할 수 있었을 때 교통방송, 용사의 집 등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모두 미래유산이었다.

"제 가게를 찾는 사람들은 극빈자예요.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노숙자, 차상위 단계 그런 사람들이나 오고, 여긴 사업장으로서의 기능은 다 했어요."

자신이 운영하는 숙박시설이 미래유산에 지정됐지만 A씨는 현재 수입이 없어 주말에 중장비운전 공사일을 하며 투잡을 뛴다. 재개발에도 미래유산에도 그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다. 그가 있는 구역도 현재 도시환경 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돼 시행을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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