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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TV]"58년간 한시도 잊은 적 없어"…구순 엄마의 마르지 않은 눈물

전남 해남에서 곱게 길러 서울로 유학 보낸 첫째 아들이 58년 전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열아홉에 낳아 금지옥엽으로 기르던 아들은 당시 실권자였던 이기붕 집 앞에서 기관총 3발을 맞았다. 아들은 어미를 두고 먼저 가버렸지만 어미는 아직도 아들을 못내 잊지 못했다.

"첫째 아들 따라서 저세상으로 가버리려고 마음먹었는데 당시 3살이던 넷째 아들이 계속 나를 따라오는 거야. 떠날 수가 있었겠어?"

지난 1960년 4월 19일. 서울에서 시위 도중 희생된 고(故) 윤광현(당시 20세, 배문고 3년)의 어머니 민기애 여사(96). 그에게 4·19혁명은 평생의 상처다. 올해로 58주년을 맞는 4·19혁명. 앳된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 앞에 서 있는 유가족은 나이를 배로 먹었다.

"봄이 되면 그만큼 많이 아파하세요"

민기애 여사의 다섯째 아들인 윤유현씨(61)는 어머니를 보필하며 상처를 공유했다. 4·19혁명에서 경찰의 발포로 186명이 사망했고 이 중 77명이 학생이었다. 윤광현씨 또한 서울의 학교를 다니던 평범한 학생 중 하나였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도 있었고 남편을 잃은 20대 부인도 있었다. 매년 4월 19일에 수유리로 남편을 만나러 가는 안정우씨(85). 안씨의 남편은 명동성당 근처에서 양품점과 얼음 가게를 운영한 고(故) 박상범씨(당시 23세)다. 같이 산 기간은 4년이 조금 넘는다.

"장사 끝내고 남편이 집에 들어와서 저녁 먹으면서 애들이 예쁘니까(당시 딸 둘) 애들 한 번씩 보고 그랬던 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남편은 인정이 많고 자상했죠."

"18일 아침에 남편이 식사하고 나갔는데 그 후 연락이 없었어요. 사고 소식을 듣고 영안실로 갔죠. 거기서 본 게 남편의 마지막이라고..."

안씨는 27살에 남편을 허무하게 먼저 보내고 미망인이 됐다. 남편 없이 딸 둘을 악착같이 키워냈다. 58년의 세월이 어떻게 간지 모르겠다면서 그는 연신 허망해했다.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불법 개헌을 강행하며 장기 집권했던 이승만 정권. 독재에 항거하고 민주주의를 이뤄낸 건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명동에서 장사하던 다정한 아버지, 가족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서울에서 공부하던 명석한 첫째 아들이었다.

평범한 그들은 어떻게 시위에 참여하게 됐을까? 당시 고 윤광현이 남긴 일기에서 심경을 엿볼 수 있다. 다음은 사망 한달 전에 그가 남긴 일기의 일부다.

"내가 생각하던 대로 자유당의 압도적인 승리. 이것은 폭력의 승리다. 어리석은 승리다. 마산에서 데모대와 경찰이 충돌하였다. 불상사가 났다. 한심스러운 일이다. 내 민족이 나라를 만들어서 서로 죽이다니." (1960년 3월 16일 수요일 맑음)

구순이 훌쩍 넘어 발음하기도 힘겨워하는 민기애 여사. 그는 "4·19 정신이 우리 후손들한테도 바로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여사의 눈은 슬펐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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