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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TV] 아관파천 '고종의 길' 최초 개방, 숨겨진 의미는?

'고종의 길'이 8월 1일부터 한 달간 시범 개방됐다. '고종의 길'은 1986년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에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고종이 피신했던 '아관파천'의 통로다. 덕수궁 후문에서 사선으로 난 입구부터 구 러시아 공사관이 남아있는 정동 공원까지의 120m의 길을 지칭한다.

미국 대사관 관저 영향권에 있었던 '고종의 길'부근은 구한말 대한제국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1895년 명성왕후가 일본 낭인에게 살해되자 고종은 이듬해 2월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다. 1년 간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은 경복궁 대신 덕수궁으로 환어한다. 동시에 지금의 조선호텔 자리에 있던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된다.

'고종의 길'은 현재보다 넓었던 당시 덕수궁의 권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길은 현재 덕수궁 권역 바깥에 있지만 당시에는 덕수궁 내에 있었다. 대한제국(1897년~1910년)의 궁터는 현재 덕수궁 터보다 서쪽으로는 구 러시아공사관부터 동쪽으로는 서울광장까지였다. 1899년 하인리히 친왕이 국빈 방문을 할 때는 경희궁과 덕수궁이 연결돼 하나의 거대한 궁터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10년 대한제국 멸망 후 '고종의 길' 근방은 최근까지도 일본과 미국의 부지로 활용됐다. 1800년대 후반만 해도 70여 동의 전각과 누각이 있었던 덕수궁은 일제강점기 후 규모가 축소돼 현재와 같이 작은 궁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원래의 궁터는 일본, 미국 등이 대사관과 저축은행 부지로 삼으며 훼손했다.

왕들의 어진과 신주를 모시는 선원전 자리에는 일제시대 때 '조선 저축은행 사택'이 들어섰다. 해방 후엔 사택을 미국 대사관 부대사와 직원들이 숙소로 사용했다. 그러다 2011년 한미 정부의 합의에 의해 '고종의 길'을 복원할 수 있게 됐다. 100년 만의 복원인 셈이다. 조선 저축은행 사택은 8월 공개 후 철거될 예정이다.

안창모 경기대 교수는 "고종의 길은 대한제국으로의 역사적인 전환점을 보여준다"며 현재 그 길을 아관파천의 현장으로만 해석하는 것이 안타깝다 말했다. 이어 그는 "아관파천은 일본에 대응하기 위한 고종의 적극적 방도이자 대한제국 출범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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