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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이야기] 7000년 전 역사 간직한 마을…암사동

암사동이란 이름의 유래는 백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시대 절인 백중사는 바위 위에 있는 절이라고 해서 '바위 절'로도 불렸는데 한자표기로 바위 '암(岩)'과 절 '사(寺)'를 써서 지금의 '암사동'이 됐다. 신라시대에 9개의 절이 있어서 '구암사'라 불리우다 지금의 암사동이 됐다는 설도 있으나 일부 학자는 이를 낭설이라 말한다. 암사리라는 작은 마을에 절이 9개나 있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백중사가 있던 곳에는 조선시대(1667년) 한양에 건립된 유일한 서원인 '구암서원'이 있었는데 1870년 고종 때 전국의 서원철폐와 함께 사라지고 1898년 이를 기념하기 위한 유허비만 남았다. 이후 1998년 서원을 기념하기 위해 정자를 세웠고 구암정(龜巖亭)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암사동은 한강변과 맞닿아 있는만큼 자연부락도 많이 생겼다. 대표적인 마을은 역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인 '선사마을'이다. 이 외에도 도자기를 생산하던 곳(店)이란 뜻의 점(店)말, 조선시대 공신 임숙영의 묘가 있었던 새능(新陵)말, 복을 받는 마을이란 뜻에 복지말, 지형이 우묵해서 붙여진 우묵골 등이 암사동을 이뤘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경기도 광주군에 속해있었던 암사동은 해방이후 1963년 서울의 일부가 됐다. 당시 성동구로 편입됐던 암사동은 이후 1975년 강남구에 속했다가 1979년 강남구에서 강동구가 분리신설돼 오늘의 강동구 암사동이 됐다.

암사동의 선사유적지는 기원전 5000년을 전후한 선사시대의 자취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유적이다.

이곳은 광복 이후에도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1967년부터 발굴 조사를 집중적으로 한 결과 신석기 시대의 중요한 유적지임이 밝혀져 1979년 사적 제267호로 지정됐다. 이어 1988년 움집을 발굴한 현장에 전시관을 만들어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선사유적지 내부는 줄지어 자리잡고 있는 움집과 유적지 전시관으로 구성됐다.

움집 9기는 발굴조사한 곳에서 2m가량의 흙을 덮어 복원한 것으로, 내부에 들어가 당시 생활상을 일부 엿볼 수도 있다.

전시관에서는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상과 유물·유적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유물은 단연 빗살무늬 토기로, 이곳에선 다양한 무늬의 토기를 볼 수 있다. 암사동 빗살무늬 토기는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생활을 축소해놓은 모형과 현존했던 동식물 등을 볼 수 있다.

2만 5000평의 너른 땅인 만큼, 산책하기도 좋아서 서울시 둘레길(3코스-고덕·일자산코스)로 지정되기도 했다.

암사 유적지에서 약 1.2km 떨어진 곳에는 7명의 왕을 섬기면서 도덕정치를 실천한 광릉부원군 이극배(1422~1495)의 묘와 그 후손들의 묘까지 총 11기의 묘가 있다. 1993년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됐다.

광릉부원군은 국사(國事) 처리 능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는데, 1486년 명나라에서 온 막무가내 칙사 동월에게 뛰어난 협상술로 응대, 그에게 인정받고 성종에게 말 한 필을 하사받은 일화가 있다.

그의 후손에 따르면 그는 '겸손'과 '공손'을 강조, 손자 이름을 수겸과 수공으로 짓기도 했는데 '모든 것은 성대하면 반드시 쇠하게 돼 있다'는 말을 자주 함으로써 자만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이런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은 매년 모여 세일사를 봉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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