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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야기] 굴곡의 역사를 걸어온 후암동…①변천과정

한양도성 내사산(內四山)의 하나인 남산. 그 서쪽자락에 위치한 후암동은 원래 한성부 성저십리 지역으로 궁중에 쓸 가축을 기르는 관청 '전생서'가 있다하여 한성부 남부 둔지방 전생서 내계와 외계에 속하였다.

조선후기를 지나면서 남산 서쪽자락을 중심으로 마을이 발달하면서 새 이름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마을의 명소였던 검고 큰 두텁바위의 이름을 따 후암동(厚岩洞, 두텁바위 마을)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술국치 이후 많은 일본인들이 남산자락에 터를 잡으면서 1914년 일제에 의해 마을이름을 잃게 되었고, 일본식 이름인 '미사카도리' 즉, 삼판통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어 일제는 1925년 남산자락에 신사인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짓고, 그 아래엔 대규모 주거 단지를 조성하고는 서양식 주택인 '문화주택'을 만들어 일본인만의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일제의 만행은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일제의 패망으로 1945년 광복과 함께 조선신궁은 바로 해체되었고, 일본인들도 철수하며 남산자락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다시 골목을 채운 사람들은 옛 기억을 더듬어 '두텁바위 마을'을 기억해냈고, 1946년 10월 1일 행정구역을 일제식 동명에서 우리 이름으로 바꾸면서 후암동을 살려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울의 산업화와 현대화를 거치며 두텁바위 역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름만큼은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 길 이름을 '후암로'와 '두텁바위로'로 짓기도 했다.

또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2013년 두텁바위를 다시 만들어 마을 입구에 설치했고 결국 두텁바위 마을을 복원해냈다.

현재의 행정구역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으로 법정동과 행정동 명이 같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 지식백과 골목이야기 시리즈 '후암동'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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