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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야기] 굴곡의 역사를 걸어온 후암동…②남산자락의 역사

후암동이 자리잡은 남산자락은 우리 근현대사의 극적인 사건들의 중심이었다. 일제강점기 이곳에 신사를 세울 만큼 일제도 중요하게 여겼던 남산자락은 해방 후 들어선 정부에서도 정치적으로 중요한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먼저, 이승만정부는 1956년 조선신궁이 있던 자리에 대통령의 80회 생일을 기념해 이승만 동상을 세운다. 그리고 그 아래 광장에 국회의사당 건립을 추진하며 서울의 중심공간으로 키워나간다.

이에 대해 근대도시사를 연구한 염복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남산은 시가지 전체가 조망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력에게나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자리였을 것"이라며 "일제가 이용했듯이, 남산의 상징성을 제1공화국도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라 분석했다.

하지만 제1공화국의 남산은 불과 4년 만에 변화를 맞는다. '3·15 부정선거'로 일어난 '4·19혁명'으로 성난 군중들에 의해 동상이 철거되었고, 이승만 대통령 하야와 함께 국회의사당 건립 역시 전면 백지화됐기 때문이다.

잠시 버려진 공간이 되었던 남산은 1961년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자, 다시 중요한 민족 상징 공간으로 이용된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 '민족정기를 되살리겠다'며 이승만 동상이 있던 자리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지었고, 기념관 주변 남산자락에 위인들의 동상을 세워 '민족정기의 전당'으로 만들어 나간다.

그렇게 정부는 남산 자락을 남산도서관(1965년), 식물원(1968년) 등과 함께 역사와 문화의 공간으로 정착시켰다. 그리고 남산은 40여년 동안 큰 변화없이 그대로 유지된다.

남산자락은 2010년대 들어 '부정적인 사건도 역사'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다시 변화를 맞는다.

시설 노후화로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새롭게 건립되면서 기념관 조성 이전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한양도성 복원 사업으로 조선신궁 터까지 발견되면서 남산 훼손의 흑역사가 재조명된 것.

이에 대해 근대건축을 연구하는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우리 과거의 어두웠던 흔적들을 일정한 정도는 (역사로서)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인식한 것"이라며 "남산의 제 모습을 찾는 과정은 역사 바로 세우기의 굉장히 중요한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 지식백과 골목이야기 시리즈 '후암동'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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