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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야기]②대학로-독재에 맞선 민주화의 거리…그곳에 학림다방이 있다

아직도 그곳엔 고전 음악이 흘러나온다. 민주주의를 토론하던 사람들은 없지만.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학림은 안 잊었노라" (언론인 홍세화)

지금의 동숭동 샘터갤러리 맞은편에 위치한 학림다방. 1956년부터 지금까지 대학로의 터줏대감으로 남아있는 이 카페는 70년대와 80년대 학생운동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문익환, 백기완, 홍세화, 이청준 등 당대 지식인들이 모여 민주화에 대해 토론하고 전국 민주학생연맹이 모임을 가진 곳. 학림다방. 서울대학교 문리대 제25강의실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당시 학생들과 교수 및 지식인들의 아지트였다.

전두환 군부세력은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전민학련이 모임을 갖던 학림다방의 '학림(學林)'에서 이름을 따 학림사건을 조작했다. 거리에서 시위하던 학생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공안실로 잡아넣고 전기와 물고문을 하던 시절이었다.

대학로 자리는 원래 수도원이기도 했다. 조선으로 온 독일의 성 베네딕도 수도회가 1909년 동숭동 일대에 둥지를 틀었다. 1924년 이 수도원의 일부가 경성제국대학으로 사용됐고 1948년 서울대학교로 바뀌게 된다. 아직도 혜화동 로터리에서 미아리고개 쪽 방향 혜화동 일대엔 천주교의 흔적이 남아있다. 가톨릭대학 신학대학과 혜화동 성당이다.

대학로는 4·19 혁명 때부터 전두환 신군부세력에 대항하는 학생운동이 일어날 때까지 그야말로 혁명의 거리였다. 서울대 동숭동 캠퍼스 맞은편의 혜화동 주민들은 학생들을 집에 숨겨주기도 했다. 명륜4가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60년 넘는 세월을 대학로에서 보낸 한승혁 씨는 70년대 학생운동 때 많은 학생들이 혜화동 골목으로 경찰을 피해 주민들의 집으로 들어왔다고 증언했다.

역사는 흘러 지금의 대학로엔 마로니에 나무와 몇 개의 건물만이 산증인으로 남아 있다.

마로니에 공원 아르코 미술관 오른편에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본관이 바로 서울대학교 문리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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