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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야기] 실핏줄 같은 '골목길'이 곳곳에…①보광동의 유래

용산구에 자리 잡고 있는 보광동은 약 0.7㎢의 면적으로 만 6000여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도심치곤 드물게 오래된 연립주택과 구불구불한 골목이 많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보광동이란 땅 이름은 신라 진흥왕 때 보광국사가 세운 보광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광사는 조선조 말까지 존속했으며 봄 가을로 제사를 지냈는데 이는 구술로만 전해진다.

이곳은 대동여지도, 수선 전도에서 지금의 보광동(普光洞)이 아닌 보강이(保江里)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후 1936년 경성부로 편입하면서 보광정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에 따라 지금의 보광동이 됐다.

보광동은 크게 웃보광이, 아랫보광이 건넌말 등 세 개의 마을과 우사단 주변으로 나뉜다.

먼저 아랫보광이는 현 김유신사당 일대에 있던 보광동의 본(本) 마을이다. 보광동의 윗쪽에 둔지미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이 마을은 아랫보광이로 불렸다. 원주민들에 따르면 해방 전까지 약 30여호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고 한다. 이 곳에는 또 마을의 주신으로 모시고 있는 김유신 장군의 사당이 있다.

웃보광이는 보광동의 위쪽에 자리한 마을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주변의 둔지미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주해서 이룬 마을이다. 이곳에는 둔지미에서부터 마을 공동으로 모셔오던 부군당을 그대로 옮겨 모시고 있다.

건넌말은 '동쪽으로 건너다 보이는 마을'이라 해서 마을의 이름이 생겨났으며 지금은 보광시장이 자리잡고 있다.

건넌말에서 북쪽으로 가다 보면 우사단이란 곳이 있는데, 이곳은 기우제와 기설제를 지내던 제단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우사단에서 이태원 쪽으로 가는 길에는 이슬람 사원이 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이슬람 문화권이 형성돼있다.

보광동과 동빙고동이 맞닿아 있는 곳에는 '도둑촌'이란 곳이 있다. 이 곳은 5·16 군사 정변 당시 1201 육군 공병단이 있었던 곳으로, 정변 이후 고위 관료들이 호화 주택을 짓자 동네 주민들이 '도둑질을 하지 않고서야 이같은 고급 주택을 어떻게 지어 살 수 있겠느냐'고 말해서 '도둑촌'이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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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보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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