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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TV]"칼바람에도 집수리도 못하고"…백사마을 주민들의 겨울나기

수분 없이 말라비틀어진 흰모래. 백사(白沙) 같은 탄재가 집 앞에 뿌려져 있는 마을.

사람들은 서울시 노원구 중계본동 산 104번지에 자리한 이곳을 백사마을이라고 부른다. 동네마다 무성히 널려있는 흰모래. 겨울이면 매번 등장하는 탄.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웃풍을 막으려면 6시간마다 한 번씩 까만 탄을 부뚜막에 넣어야만 한다. 아니면 수도관이 얼어서 터져버린다.

타버린 연탄재들처럼 집들도 위태롭게 서있다. 모래 위의 집들과도 같았다. 12일 찾은 백사마을은 슬레이트 지붕을 서로 맞대며 위태위태하게 마을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돈이 있으면 그 사람한테 감히 누가 말을 못 하잖아. 돈이 없으면 어디 가서 기를 못 펴고 말 한마디도 못해..."

주민들 대부분은 고령자에 기초생활수급자들이다. 백사마을 중턱에서 마주친 A씨는 40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아랫동네에서 도로가 나서 보상을 받고 다시 이곳 백사마을에 세입자로 들어왔다. 보상비를 얼마 받았냐고 조심스레 물었더니 자식 네 명의 등록금을 하고 나니 모두 없어졌다고 했다. 유일한 수입원은 학교 급식실 도우미. 일주일에 두 번 가서 한 시간 일을 해주고 한 달에 12만 원을 번다.

"없이 사니까 없는 사람들은 항시 무엇이든지 겨울이 오면 두렵지. 어디 한 발자국만 수리하러 들어가 봐. 다 돈이야."

탄값이 올해 100원 올라 어렵지 않냐는 질문에 그들은 침묵했다. 방바닥은 그래도 따뜻한 기운이 올라왔다. 물론 배꼽 위에서부터 추위가 살결로 파고들었다. 지붕 한 구석이 주저앉아 팔뚝 만한 각목이 이를 가까스로 떠받치고 있었다. 곰팡이가 가난만큼 깊게 천장에 스며들어있다. A씨의 딸도 세 자녀와 함께 인근 백사마을에 산다.

짠 무, 엿기름, 강낭콩 등을 팔며 50년째 마을에서 살고 있는 B씨. 동네의 터줏대감인 그는 연탄이 필요하지 않냐는 질문에 잠시 뜸을 들였다.

"그냥 나는 죽기 전에 얼른 재개발돼서 좋은 데서 살다 죽고 싶어. 여기 탄 안 떼면 수도관이 얼어 터져 버려."

거리에는 분주히 연탄을 나르는 봉사자들이 지나갔다. 이날은 연탄 자원봉사의 날이다. 매달 그들은 왔다 간다. 그러나 탄을 떼도 집 지붕은 흔들린다. 가스는 언제 샐지 모르고 웃풍은 밤마다 뼛속까지 파고든다. 손은 시리고 삶은 무겁고 겨울은 더욱 두렵다.

◇ 2002년 재개발 고시 이후 16년... 서울시 첫 주거지 보존 재개발 지역

백사마을은 2002년 재개발로 고시됐다. 이후 서울시에서 처음으로 추진한 '주거지 보존 재개발'지역이 됐다. 재개발 고시 이후 원주민들을 나가게하고 아파트를 지어버리는 기존 개발형과는 달리 원주민들과 마을의 형태를 보존하면서 개발하는 정책이었다.

2002년부터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설립됐다. 올해 6월만 해도 사업이 척척 진행되는 줄 알았다. 그러다 산 아래자락에 아파트를 5층으로 설계한 데에서 갈등이 시작됐다. 서울시가 공모를 통해 선정한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의 설계도면을 추진위는 거부했다.

6월에 도면이 통과가 됐다면 개발은 투트랙으로 나눠 진행될 예정이었다. 백사마을 원주민들이 살 수 있는 영구임대아파트가 바로 옆에 지어졌을 것이다. 일명 주거지보존지역이다. 그리고 이들이 나간 지구에 백사마을의 산 형태를 최대한 살린 아파트 2000가구가 생겼을 거다.

현재는 재개발추진위원회가 건축사사무소에 법적투쟁까지 하면서 고층 아파트를 요구하고 있다. 낮은 아파트가 주변 경관을 보존하는 '도시재생'적 모델이라면 고층 아파트는 '재개발'에 적합한 모델이다. 두 모델이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 재개발 도안 반대하는 이들은 주민이 아닌 땅주인

백사마을에서 이틀간 만난 주민들은 대부분 세입자였다. 재개발 추진위원회는 땅을 매입한 외지인들이 대다수다. 주민들은 재개발이 빠르게 진행돼서 폐허 같은 곳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낮은 아파트건 높은 아파트건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조남호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추진위가 반대한 모델에 대해 수정할 의사가 있다면서도 도시계획에 대한 전반적인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 말했다.

실제 언덕 위 재개발의 경우 낮은 층수로 만들어 산과 풍경을 유지하는 것은 보편적인 아이디어다. 공모전에 제출된 6개의 설계도면 중 5개가 부분적으로라도 저층 아파트를 설계했다.

그러면서 그는 협의체가 없었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공모 이후에도 자문위원회에 주민들이 참여해 균형 잡힌 논의를 했다거나 공모 심사위원에 참여했던 SH측에서 주민들의 입장을 대변했어야 했다 말했다.

그는 "서울시가 성숙한 도시가 되려면 재개발 시 경관에 대한 철학이 가이드라인으로 나와야 할 것"이라며 "오래된 것들을 어떻게 보존하는지 제도적인 측면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이 장기적으로 좋을 것"이라 말했다.

서울시에서는 21일까지 도시계획소위원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때까지 백사마을에 대한 조정안이 제출된다면 갈등이 봉합될 여지가 있다.

현재 백사마을에 사는 주민은 주민등록상 1900명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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