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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야기] 마을의 기록으로 역사를 만나다…③진관동 마을이야기

진관동은 재개발로 인해 골목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우물골, 마고정, 잿말 등 이름을 통해 마을 이야기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금성당(錦城堂)에서는 마을 토속신앙의 사연을 엿볼 수 있다. 금성당은 원래 고려 때부터 국가의 주도로 치제를 올리던 금성대왕 모시는 공간으로 원래는 나주 금성산에서 모셨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한양으로 옮겨온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후기를 지나면서는 단종 복위를 꾀했던 금성대군을 함께 모시면서 충의의 상징을 더했다.

민속학을 연구한 양종승 샤머니즘박물관장은 "금성당제를 올리면서 시화연풍, 국태민안, 태평성대를 축원했던 아주 귀중한 공간"이라 설명했다.

이어 "한민족의 정서, 설화, 사상이 깃들어 있는 신앙”이라며 “그만큼 중요한 우리 유산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좀 가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금성당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고, 토속신앙 자료를 모아 재개발 지역에서 제외시키며 금성당을 지켜냈다. 금성당은 2008년 7월 22일 국가민속문화재 제258호로 지정되었고 리모델링을 거쳐 2016년 '샤머니즘박물관'으로 개관했다. 지금은 토속신앙과 전통굿당을 재현해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또 진관외동 175번지 일대에 만들어진 기자촌은 현대사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려준다.

기자촌은 1969년 무주택기자 335명이 주택조합을 만들어 문화재관리국 소속의 부지를 불하받고 공동주택을 지어 조성한 마을이다.

기자들이 만들어 모여 살았던 마을이기 때문에 기자촌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웠다 한다. 기자촌 조성 당시 입주했던 이청수 前 KBS 워싱턴 총국장은 "기자들이 함께 모여 살았기 때문에 생활이 안정돼 언론 정신을 키우는데 도움이 됐다"며 "그러다보니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더 비판적인 기사들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기자촌도 세월이 지나며 낡은 마을로 변했고, 2006년 은평 뉴타운 지역에 포함되며 재개발이 진행됐다. 기자들을 품고, 길러낸 공간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기자들은 마을을 떠나면서도 지난 기록을 정리하고 사진을 찍는 등 기자촌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기자촌 조성 당시 입주자 명단과 기자촌의 유래, 연혁을 새긴 표지석을 설치해 기자촌의 지명을 지켜냈다.
이같은 기록과 기억은 기자촌에서 활동했던 시인, 소설가 등 문인들의 기억 역시 불러냈다. 은평구는 이 기록을 시작으로 기자촌과 은평구의 문인들을 정리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기자촌 부지에 국립한국문학관을 유치하게 되었다.

김시업 은평역사한옥박물관장은 "이러한 분들이 북한산자락과 진관동의 역사 속에서 문학을 이끌어나가고 활동을 했기 때문에 국립한국문학관이 은평 기자촌 자리에 들어올 수 있었다"며 "이는 인연이자 필연"이라고 강조했다.

기자촌 이야기는 그렇게 문학이란 이름으로 다시 생명을 얻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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