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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실패사용법]③49세 소방관은 왜 '그 일'에 뛰어들었을까

그가 명함을 건넸다. 빼곡한 항목 가운데 하트(♡)로 시작하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맨 상단에 제법 크게 적혀 있었고, 검은 글자들 속 저 홀로 파란색이었다.

'♡소방관을 살리는 소방관♡.'

박승균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남양주소방서 소방관(49)은 '국내최초 소방관 전문상담사'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는 동료들을 보며 심리치료 공부를 시작, 2016년 이 분야 석사학위를 받았다. 소방공무원 심리치료에 기여한 공로로 '소방안전봉사상 대상'도 수상했다. 2년 전엔 소방관 전담 상담조직인 '소담팀'을 꾸려 아픔을 호소하는 소방관들을 일일이 찾아가 만났다.

'이 길이 맞나' 끊임없이 의심하며 견뎌온 시간들. 그의 20년 소방관 인생은, 명함 맨 윗자리를 차지하는 '소방관을 살리는 소방관'이 되기 위한 여정이었다.

◇삶의 빨간 불…'내가 왜 이러지?'

"소방관 10년차 때였어요. 어느 날 가위눌린 듯 한참동안 몸을 못 움직이겠더라고요. 또 어떤 날은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자동차 핸들을 꺾어 떨어져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난생 처음 들이닥친 '삶의 빨간 불'에 그는 당혹스러웠다.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스트레스 관리 잘 하라"고 했다. 박 소방관은 자신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심리관련 서적도 독파해 나갔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마음이 많이 아팠구나.'

그의 '심적 내상(內傷)'은 사고현장에서 목격한 참혹한 광경과 맞닿아 있었다. 화재진압 중 발견한 시신, 폭발사고 현장서 화상 입은 사람들에게서 나던 살 익은 냄새…. "무의식 저편으로 가둬놨던 끔찍한 기억들이 억눌려 있다가 판도라 상자처럼 열린 거였어요."

◇'동료를 살려야겠다'는 절박감

심리치료 공부에 발을 들인 건 동료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소방관들이 1년에 충격적인 사건을 평균 7~8번 경험해요. 10년이면 70번인데, 이게 굉장히 큰 스트레스가 되죠. 그래서 소방관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취약해요." 실제로 2014년 소방청 조사에 따르면 PTSD를 겪는 소방관 비율이 일반인보다 10배이상 높았다.

충격적인 기억을 눌러놓은 채 출동벨 울리면 소방차에 몸을 싣기 바쁜 동료대원들. '그 누구보다 119가 필요한 동료들의 고민을 들어주자.' 그가 소방관을 상담하는 소방관이 된 이유였다.

◇'죄책감'…그럼에도 '내가 가야할 길'

'그 사건'은 3년 전, 상담에 제법 자신감이 붙었던 무렵 일어났다.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한 소방관 선배가 있었어요. 급성 암으로 요양 중이셨죠. 그러면서도 격려를 많이 해 주셨어요. 다섯 달 동안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선배의 아픔도 알게 됐죠. 하루는 선배가 그래요. '대전현충원에 가서 순직소방관 묘역에 헌화하고 싶다'고요. 하지만 저는 바쁘다는 핑계로 약속을 미뤘어요."

1주일 뒤 듣게 된 소식은 선배의 부고(訃告).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듯싶었죠. 선배의 부탁이 마지막 사인인 걸 알아채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컸어요. '내가 상담사가 맞나?' 무척 고통스러웠죠." 죄책감이 그를 아프게 찔렀지만, 속죄하는 마음으로 다시 동료 대원들에게 다가갔다.

"예전엔 의욕이 앞서 많이 만나고 많이 상담하고 싶었어요. 좋은 결과를 내야겠다는 욕심이 컸죠. 하지만 지금은 한 명, 한 명이 소중해요. 동료들의 문자 한 통, 전화 숨소리에도 민감해졌고요."

선배를 보낸 뒤 동료 개개인의 고민을 더 민감하게 듣게 된 박승균 소방관. 인터뷰 말미 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동료를 살리고 싶으세요?" "제가 무지 아파 봤으니까요. 동료들은 덜 아팠으면 좋겠어요. 소방관이 소방관을 지켜주지 않으면 누가 지켜주겠어요? 소방관을 살리는 일은 제게 주어진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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