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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야기]근현대사의 중심을 만나다…격동의 현장 장충동

일제강점기 굴욕의 역사를 지나 충혼의 마을로 돌아온 장충동은 현대사를 거치면서도 역사의 중심에 서왔다.

해방 이후 새롭게 들어선 정부는 일제 강점기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박문사 자리에 국가의 귀빈을 모시는 공간 영빈관(迎賓館)을 세워 국가의 공간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그 자리는 원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들을 추모하는 장충단이 있던 곳으로, 영빈관은 역사 복원과는 거리가 먼 선택이었다.

이는 식민지배 색채가 강한 장소들의 흔적 지우기 작업을 빠르게 진행했던 당시의 시대상이 반영된 결과였다.

이에 대해 근대건축을 연구한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현충시설이었던 장충단의 의미를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장소적 활용가치만 염두에 두고 영빈관이 만들어졌다는 건 문제"라며 "(당시) 우리가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의식이 부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라 평가했다.

이어 박정희 정부는 장충동 지역을 민족 정통성과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먼저 최초의 실내체육관인 장충체육관을 세워 국가의 힘을 과시함과 동시에 자유센터를 지어 반공을 강조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갔다. 장충공원에는 순국선열 동상과 기념비를 세워 민족의 공간으로 키우려했다. 또 태평로에 세웠던 유관순 열사 동상을 장충동으로 옮겨와 박문사가 있었던 영빈관을 바라보게 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 했다.

개발독재시대가 끝나고 민주화 되면서 장충동은 다시 변화를 맞는다. 이 지역에 모인 동상과 기념비 덕분에 일제강점기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근대사를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 그 시기에 맞춰 2000년 7월엔 국내 최초의 문학박물관인 한국현대문학관이 장충동으로 들어왔다. 수필가인 고 전숙희 선생이 문예잡지 동서문학(東西文學)을 발간하며 모아온 작가들의 원고와 책자, 사진자료 등을 정리해 개관한 공간이다. 한국현대문학관 서영란 학예사는 문학관에 대해 "작가들이 담은 시대 현실을 통해서 우리가 근대의 풍경들을 더 잘 교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문학이 근현대사를 파악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근현대사의 정리는 서울 중구에서도 이어졌다. 장충단 공원내에 '기억의 공간'을 만들어 장충단 역사와 남산의 역사를 정리했고, 해설사를 두고 장충단 호국의 길'탐방코스를 운영해 역사를 알리고 있다.

장충동은 장충단을 중심으로 굴곡진 근대사와 산업화‧현대화 과정에서의 현대사를 중심을 오롯이 받아들여왔다. 덕분에 긍정적 역사와 부정적 역사가 혼재한 한국 근현대사를 골목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역사적인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에 대해 염복규 서울시립대 교수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복합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소로 장충동을 기억하는 것이 역사를 바라보는 가장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며 장충동의 역사적 다양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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