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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내 친구는 왜 베란다에서 몸을 던졌나?

"네가 서울 왔으면 좋겠어"

"와요 와요. 남자친구가 나보고 독거노인이래"

"사랑해. OO아. 보고싶어"(2018년 11월 9일)

"너무 보고싶다"(2018년 11월 11일)

"하늘에도 연락할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2018년 11월 24일)

지난해 11월9일 이후 친구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에서 1이 사라지지 않는다. 정은씨(가명)의 대학 동기이자 가장 친했던 친구인 강OO는 이제 세상에 없다.

11월 9일 정은씨(가명)의 친구 강OO가 사망했다. 춘천의 한 법인회사에서 비정규직 디자이너로 일하던 강씨. 당시 나이 29세. 그 날은 강씨의 성과를 축하하기위해 모인 회식자리였다.

만취 상태로 비틀거리며 상사의 아파트로 함께 가던 강씨. 몇 시간 후 그는 싸늘한 시신으로 아파트 화단에서 발견됐다.

용의자는 검찰 조사에서 피해자를 추행한 사실을 자백했다. 자신의 아파트에 가두고 피해자를 강제로 성추행하려 했고 피해자는 여러번 방에서 탈출하기를 시도하다 결국 베란다로 뛰어나갔다. 난간에 매달린 흔적이 당시 그의 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피의자는 춘천경찰서에 구속됐지만 준강간치사가 아닌 강제추행으로 검찰에 기소됐다. 검찰은 4년을 구형했고 판사는 1심에서 6년을 선고했다. 강제추행이 최대 징역 4년6개월인 걸 감안하면 다소 엄중한 형량이지만 강간치사였다면 적은 형량이다. 강간치사는 최소 10년 형을 구형받기 때문이다.

강씨의 어머니는 참다못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29살 꽃다운 딸! 직장 상사의 성추행으로 아파트에서 추락하여 사망.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은 4일 기준으로 6만2천여명의 동의를 받은 상태다.

◇강간을 피해 달아나다 죽었는데 왜 '추행'만 성립했나?

청원게시판에 6만여명의 동의를 얻은 이 사연에서 가장 공분을 산 지점은 강간을 피해 달아났는데 '강간치사'가 아닌 '강제추행'으로 기소됐다는 사실이다. 피해자가 사망했음에도 추행죄만 물어 문제가 됐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형법체계의 구조적인 문제도 제기했다. 입증이 어려울 경우 무죄로 풀려나기 때문에 더 낮은 형으로 안전하게 기소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내가 입은 피해를 법이 인정해줘야 유죄가 된다"면서 "피해 사례를 법을 통해 종합적으로 적용하기엔 법의 구성 여건이 굉장히 좁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강간치사'로 기소했을 경우 정확히 강간치사를 입증할 수 없으면 무죄가 나올 수밖에 없어 다소 적은 죄로 기소를 시킨다는 말이다.

그러나 구조적인 문제로만 이 사건을 보기에는 다소 맹점이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원경주 법무법인 명문 변호사는 "사망의 결과에 대해 좀 더 심도있게 다뤘으면 좋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 같은 장소에 있었던 목격자의 진술과 CCTV영상 등이 있었음에도 사망의 결과를 생략한 점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했다.

피의자측 2심 변호인에 입장을 물어봤으나 아직 진행중인 사건이라 답할수 없다고 말했다.

◇처벌 공백 줄이는 법 체계 필요해

전문가들은 결국 처벌하지 못하고 있는 공백을 줄이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김혜정 부소장은 기본적으로 동의 없는 성관계를 성폭력으로 규정하고 여기에 위력인지 폭행인지 등에 따라 가중처벌을 하는 방식이라면 처벌 공백이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독일과 영국 같은 경우엔 동의 없는 성관계를 기본적인 성폭력으로 보고 있다" 면서 한국은 '강간치사'인지 '준강간'인지 '위력에 의한 간음'인지 구체적인 죄명을 정해서 기소한 후 재판하는 과정에서 사건의 실체와는 동떨어진 무죄 선고가 자꾸 나온다"고 안타까워했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비동의간음죄가 한국에도 적용 된다면 조금 더 성폭력에 있어서 사건을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이어 "법에서는 저항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서 "탈출하려는 강력한 저항행위를 하다 죽은 여성에 대해 법이 보호해주지 못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고 ㅅ지적했다. 가해자의 직접적 행위로 사망한 경우만 '치사'로 인정되는 것에 맹점이 있다는 말이다.

실제 이런 공백으로 성폭력 사건의 기소률은 다른 강력 범죄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대검찰청 2017년 범죄분석에 따르면 2016년 고소된 성폭력 사건 중 기소율은 41.8%에 불과하다.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끼던 사건들… 청원에 참여해준 분들 너무 감사해

"원래는 사건 사고를 보면 다른 나라 전쟁 보는 느낌이었어요"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던 친구의 죽음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오면서 기사로도 보도 됐다. 아직 명확하게 해결된 것은 없지만 그래도 정은씨는 힘이 된다 말했다.

"처음에 법정에 갔을 때 냉정함을 많이 느꼈어요... 저런 단어나 저런 말로 친구의 죽음을 표현하니까요. 재판도 너무 빨리 끝나버리고 저희는 아무 말도 못했어요"

그는 친구와 자주 걷던 골목에서 가만히 한 곳을 응시했다. 범죄가 사건 사고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닥칠 지 꿈에도 몰랐다. 지금도 그 골목 어귀에서 친구가 아끼던 강아지를 껴앉고 나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줄 것만 같다.

그는 핸드폰으로 법원 사건번호를 검색해 매일 같이 들여다보고 있다.

"청원 글을 사람들이 동의해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만약 나한테 왔을 때 이렇게 동의를 했을까 생각이 들면서요. 한 표 한 표가 정말 소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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