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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야기]골목에서 핀 마을의 전통…장충마을 생활사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품어온 마을 장충동은 현대화를 거치며 도시 생활사 역시 품어왔다.

일제강점기 문화주택(일본인들이 지은 서양식 고급주택)이 많이 들어서며 대형 주택가로 자리잡았던 장충동은 1963년 우리나라 최초의 돔형 체육관이 들어서며 변화를 맞는다. 이 장충체육관에서 권투, 프로레스링 등 스포츠는 물론,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등 문화행사가 자주 열리면서 많은 시민들에게 친숙한 공간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전당대회나 유신체제 선전 행사가 열리는 등 당시 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있었지만 체육관은 중요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었고, 덕분에 장충동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이주해오며 마을 현대화 역시 빠르게 진행되었다.

당시 장충동의 이주민들 중엔 한국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장사를 시작하며 골목은 다시 변화를 맞는다. 장충동에 '벌집촌'이라고도 불리는 좁은 골목에 터를 잡은 이들은 냉면 등 고향음식을 팔기 시작했고, 이 때 오향장육을 흉내내며 평안도식으로 만든 족발도 팔기 시작했다.

장충동 주민이자 한양도성 해설사인 김종대씨는 "그래서 족발집 이름이 평안도, 함흥, 평북 등으로 지어졌다"며 "모두 이북에서 오신 분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1973년엔 명동에 있던 제과점인 '태극당'이 장충동에 분점을 내고 공장과 함께 들어왔다. 1946년 시작해 당시에도 '사라다빵', '모나카' 등으로 유명했던 이 빵집은 금세 많은 시민들이 찾는 장충동의 명물이 되었다.

태극당에서 50년 째 일하고 있는 권가명 상무는 "당시만 해도 야외에서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부족했기 때문에 (태극당이) 장충동을 오가면서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였다"고 회상했다.

현대식 체육관이 들어서며 도시로서 자리잡은 장충동은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과 그들이 만든 문화가 어우러지며 이 마을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나갔다.

2000년대를 지나며 장충동은 다시 변화를 맞았다. 40여년의 세월이 지나자 '현대식' 공간도 '구식'이 되어갔다. 최초의 실내체육관이었던 장충체육관은 가장 낙후된 시설이 되었고, 마을의 명소였던 빵집도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공간이 돼버렸다. 오래된 주택들은 이전하면서 공터가 되거나 새 건물로 바뀌며 옛모습을 잃어갔다.

하지만 당시의 추억을 간직한 장충동은 지난 추억들은 그대로 남겨두기로 했다. 불편하고 낡은 것만 고쳐 쓰기로 하면서 2014년엔 장충체육관이 이듬해엔 태극당이 리모델링되었다. 특히 태극당은 옛 방식 그대로 고수하며 빵 이름까지 '로루케익', '사라다빵'으로 전통을 유지했다.

또 실향민들이 만든 족발골목은 지난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에 등재되며, 장충동의 대표 문화로 알려지기도 했다.

장충동 마을은 이처럼 도시생활 40여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마을의 문화와 역사로 의미를 더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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