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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끝서 이병헌은 '광해', 송강호는 '영조'로 태어났다

"'천직'이란 말이 있죠. 이 직업을 천직이라 느낀 건, 단 한 번도 권태기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한국영화 분장사(史)에 굵직한 이력을 써 내려가고 있는 조태희 분장감독(40·하늘분장 대표). 고교 때 "분장에 첫눈에 반해" 발을 들인 이래 17년간 분장사로 외길을 걸어왔다. 그동안 '광해, 왕이 된 남자' '역린' '사도' '남한산성' '안시성' 등 40편이 넘는 영화가 그의 손을 거쳤다.

일찌감치 분장에 푹 빠진 조태희 감독이 최근 일을 냈다. 2012년부터 작업해온 영화 15편에 등장한 가발, 수염, 장신구 등 분장도구 500여점을 선보이는 전시를 연 것. 국내 최초 분장 전시회로, 오는 23일까지 열리는 '영화의 얼굴창조전'이다.

◇분장과의 인연

분장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고등학생 때 우연히 본 TV방송 때문이었다. "드라마 현장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어요. 그 방송에서 나이 지긋한 분장사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배우들 분장하는 모습에 첫눈에 반했죠."

스무 살, 대학 말고 분장학원에 들어갔다. 첫 실습은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2주간 보조출연자 분장에 투입됐다. "영화분장이 무척 매력적이었어요. 그때 더 확실해졌죠. 분장을 평생 해야겠다고요."

영화분장에 매료되기도 했지만, 분장에 매달려야만 버틸 수 있는 상황이었다. "20대 초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1년 반도 안 돼 아버지도 폐암말기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엄청난 충격과 정신적인 고난을 받았죠. 송두리째 흔들리는 인생을 잡아준 게 분장이었어요."

◇분장인생의 암흑기

이 악물고 분장에 매달렸다. 2001년 사극분장을 배워야겠단 생각으로 방송국에 입사했다. 3년 반 동안 사극 드라마에서 분장 스태프로 일했지만 영화현장이 자꾸 눈에 밟혔다. 결국 사표를 냈고 영화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를 기다린 건 '냉대'였다. 영화계에선 드라마 분장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400만 원 들여 프로필을 만들었죠. 영화사를 100군데 넘게 찾아갔어요. 전화 돌리고, 이메일도 수백 통 보냈지만 채용소식은 한 군데도 없었죠." 그러다 기적처럼 연락을 받아 시작한 영화도 몇 편 있었지만, 완성된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준비만 하다 엎어지기도 하고, 70% 찍다 중단되기도 했어요. 잔금도 못 받고 끝났죠."

그 시간이 2년이었다. 조태희 감독은 "분장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고, 내 인생을 통틀어 기도를 제일 많이 했던 기간이었다"고 했다.

◇'한 우물 파는 한 된다'

그 시기를 보내면서도 다른 길엔 곁눈질하지 않았다. "'한 우물 파는 한 된다'라고 끝없이 되뇌었죠. 또 포기가 안 될 만큼 분장이 좋았고요." 일이 들어오지 않을 때도 분장기술을 키워나갔다. 그렇게 쌓인 내공은 12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광해'에서 드러났다. "'광해'를 하고 나서 제 이름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실제로 그의 필모그래피는 '광해' 이후로 한층 촘촘해졌다.

분장인생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로 꼽은 2년의 시간. 그 실패의 과정이 없었다면 '분장실력도, 대인관계도 무척 삐걱거렸을 것'이라고 그는 털어놨다. "실패가 많을수록 노하우가 쌓이는 것 같아요. 실패는 다음 작업을 할 때 모색하는 힘이 된다는 걸 지금 많이 느끼죠."

분장이라는 한 우물을 17년간 우직하게 판 조태희 분장감독. 대부분의 영화 분장을 그에게 맡긴 이준익 감독은 <뉴스1>과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술, 예술감각, 의사소통 능력이 탁월해요. 분장을 천직처럼 여기는 자부심이 느껴지죠. 영화감독들 모두 조태희와 일하고 싶을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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