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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합창계 거장' 윤학원 "자주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그때는 나도 참 힘들었어요. 내 자신이 싫었고, 여러 가지 말들을 만든 사람들이 싫었죠."

백발의 노장(老將)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31년 전 사건은 그에게 여전히 쓰라린 상처였다. "1988년은 인생 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해였다"고 했다.

"한국 합창계의 거장이자 우리 음악을 전 세계에 알린 개척자"(탁계석 음악평론가)로 평가받는 윤학원 지휘자(80). 2011년 '청춘합창단'을 이끈 가수 김태원씨 멘토로 활약, 전국적으로 합창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선명회어린이합창단, 서울레이디스싱어즈, 인천시립합창단 등 맡은 합창단마다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가 합창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는 그러나 지휘인생 60년 동안 "도망치고 싶었던 날이 수없이 많았다"고 했다. 1988년은 유독 더 했다. "지휘를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었으니까요."

◇지휘에 푹 빠진 이유

어린 시절, 부모님은 늘 노래를 흥얼거렸다. 초등학교 음악선생님은 재능을 발견해줬다. 지휘인생은 연세대 작곡과 시절 시작됐다. 기독학생합창단 지휘를 맡으면서부터였다. "작곡보다 지휘에 푹 빠졌죠.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하나로 만들 때 굉장한 쾌감이 있거든요. 크레셴도(점점 세게)·디미누엔도(점점 여리게)와 같이 음악에 굴곡이 생겼을 때 아름다움은 특별했죠."

그 아름다움에 매료돼 들어선 지휘자의 길. 1970년 선명회어린이합창단을 맡았다. 어린 단원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흡수했고, 실력은 쑥쑥 자랐다. 그 결과, 1978년 세계합창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지휘자로서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갔다.

◇투서, 대자보…지휘인생의 밑바닥

"윤학원은 당장 물러나라." 1988년 집으로 투서가 날아들었다. 그를 반대하는 대우합창단의 단원들이 보낸 '협박편지'였다. 이 반대파 단원들은 그를 비난하는 대자보를 예술의전당에 붙였다. "내 인생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윤학원의 고백이다.

1983년 창단된 대우합창단은 '우리나라 민간기업에서 최초로 만든 프로 합창단'이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전폭적 지원 아래 단원들은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실력도 쟁쟁했다. 하지만 연습을 하는데 소리가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다. 윤학원은 단원들에게 "자기 소리를 줄이라"고 주문했다. 몇몇 단원들이 그를 향해 '당신은 성악 전공자가 아니지 않느냐'며 맞섰다.

단원들 사이에서 "연습량이 너무 많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중요한 합창행사를 앞두고 강하게 몰아붙인 탓이었다.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졌다. 단원들은 지지파와 반대파 둘로 갈라졌다. 결국 1988년 여름 윤학원은 사표를 냈다. 대우합창단은 그해 말 해체됐다.

◇언제까지 지휘할 거냐고요?

"그 당시엔 마음고생이 심해 지휘를 그만하고 싶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 억울함, 속상함, 배신감이 점점 사라졌어요. 다시 합창을 지휘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죠." 그렇게 탄생한 합창단이 서울레이디스싱어즈. 이 여성합창단뿐만 아니라 인천시립합창단, 그리고 현재 이끌고 있는 윤학원 코랄까지. '그 사건'을 겪으며 지휘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렸음에도 그는 지휘봉을 놓지 않았다.

뼈아픈 실패 뒤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실패를 통해 깨달음은 많았는데, 그 깨달음을 사용하기란 참 힘들어요. 단원들 마음을 잘 읽고 하나로 만들어야 하는데 여전히 쉽지가 않아요. 그때 그렇게 혼나고도 아직까지 쩔쩔매는구나 생각을 하죠." 그러나 그가 실패 후에도 꾸준히 여러 합창단을 이끌어온 건, 때론 들들 볶았을지언정 단원들 다독여 하나의 소리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도 연습을 나가면 "단원들 눈빛과 기분부터 살핀다"는 여든의 거장. "지휘인생을 돌아보면 무척 괴로울 때도 많았지만, 합창만큼 행복한 일은 없었다"고 했다. 인생의 8할이 합창지휘였던 그는 언제쯤 지휘봉을 내려놓으려는 걸까. "주위에서 '당신 이제 더 이상 지휘하면 안 되겠습니다' 할 때까지 해야죠. 제가 시력도 좋고, 건강도 이만하면 괜찮습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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