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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야기] 붓골에서 필동으로…①마을의 유래

필동의 동명 유래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마을 남부에 부사무소(部事務所)가 있어 '부동'(部洞)으로 부르던 것이 '붓골'로 바뀌었고, 이 '붓골'을 한자로 표기해 '필동'이 됐다.

조선 초기에는 한성부 남부 훈도방(薰陶坊)에 속한 지역이었고, 1914년에는 대화정1정목(大和町一丁目) · 대화정2정목 · 대화정3정목이라 불렸다. 이후 1943년 중구에 편입되었고, 1946년 필동1 · 2 · 3가로 바뀌었다.

필동엔 조선시대의 한 마을을 그대로 재현한 곳이 있는데 바로 남산 한옥마을이다. 한옥마을은 1989년 남산골의 제모습 찾기 사업에 의해 조성한 마을로 수도방위사령부 부지를 인수해, 1998년 4월18일에 개관했다.

한옥마을에선 조선시대 사대부 가옥부터 서민 가옥까지 당시의 생활방식을 한자리에 볼 수 있으며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기능보유자들의 작품과 관광기념상품이 전시돼 있다.

또 현대 시민생활과 서울시의 모습을 대표할 수 있는 문물 600점을 담은 캡슐을 묻은 타임캡슐광장이 있다. 개봉되는 시점은 2394년 11월29일이다.

한옥마을 외에도 곳곳에서 조선시대를 엿볼 수 있는 흔적이 있다.

필동에는 동국대가 있는데, 이 곳에는 조선의 대표 시인 중 한명인 이안눌(李安訥)의 유지(遺址)가 있던 곳이다. 그는 시문에 뛰어나 이태백(李太白)에 비유되기도 했는데 당대 명인인 이호민, 권필, 홍서봉 등과 어울리곤 했다. 그 단(壇)을 이안눌의 호를 빌러 동악시단이라고 불렀고 동악선생시단(東岳先生詩壇)이라고 바위에 음각한 글씨가 지금의 동국대학교 중문 근처에 남았다.

동악선생시단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는 경희궁의 정전(正殿)이었던 숭정전이 있다. 광해군 9년~12년(1617년~1620년) 사이에 지어졌으며 1926년 현 위치로 옮겨져 현재는 정각원(正覺院)이라는 법당으로 쓰이고 있다.

이 외에도 조선시대 국가 인쇄를 도맡았던 주자소터, 바로 맞은 편엔 조선시대 균역법 실시에 따른 업무를 관장하기 위한 곳이었던 관역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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