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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야기]①한강과 남산 사이의 마을 '한남동'

한남동은 한강과 남산 사이의 마을이다. 동네 이름은 한강의 '한'자와 남산의 '남'자를 따온 데서 유래된다.

한강과 맞닿아 있는 한남동에는 조선 시대 정자 '제천정'과 '천일정' 터가 있다. '제천정'은 세조 때부터 명종 때에 이르기까지 한강변의 정자들 중 왕들이 가장 자주 찾았고 이곳에서 외국의 사신들을 접대했다.

해상 교통과 물류 유통의 중심지 기능도 수행했다. 송파, 노량과 더불어 삼진(三津)의 하나였던 한강진 나루터는 왕래가 가장 빈번하고 큰 나루였다.

한남동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변화를 맞이한다. 1920년대 후반 도시가 확장하면서 조선총독부가 남산의 남쪽을 주거지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한다. 1930년대 후반 이태원 일대의 공동묘지가 토지구획정리 사업에 의해 고급 주거지로 바뀌면서 오늘날 '한남동'이라고 하는 고급 주거지의 기본이 만들어진다.

1950년대 후반~60년대 세계 여러 나라와의 외교 관계가 시작되면서 한남동에는 각국 대사관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외국인 집단 주거 단지 'UN 빌리지'가 형성된다. 시내와 가까운 교통의 요지, 풍광 좋은 한강변이라는 조건 등은 외국인들에게 최적의 업무지이자 주거지였다.

1969년 한강진 나루터가 있던 자리에 제3한강교, 즉 한남대교가 건설된다. 한남대교 건설은 서울의 공간구조를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60년대~70년대까지 한남동 일대의 슬럼가는 더 빠르게 성장한다. 광범위한 이촌 향도로 산등성이에서부터 산 전체를 차지하게 된 현상이 이어진다.

남산 자락의 고급 주택지, 그 아래 미군 부대, 한강변의 언덕진 곳에 UN 빌리지, 곳곳에 자리 잡은 대사관, 빼곡한 하나하나 집들이 뭉쳐 형성된 달동네. 이는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에 걸쳐 만들어진 한남동의 풍경이었다.

한남동은 2000년대로 오면서 단국대 부지에 서울에서 가장 비싼 고급 주거지가 들어섰고 미군 부대 자리에 또 다른 고급 주거지가 지어지면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한남뉴타운 재개발 계획으로 달동네는 언젠가 사라질 풍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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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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