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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야기]낙산에서 이어온 이야기, 숭인동

조선시대부터 형성된 숭인동은 원래 한성부 동부 인창방과 숭신방에 속한 지역이지만, 낙산 자락에 위치한 까닭에 산으로 더 잘 알려진 마을이었다. 그래서 마을 이야기 역시 낙산 봉우리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낙산은 청룡사, 보문사 등 고려 때부터 이어온 사찰들이 제법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비구니 사찰이었는데, 특히 조선시대에는 궁인들이 많이 들어와 '니사(尼舍)' 지역으로 더 알려지게 된다. 이 중 한 여인의 사연은 마을의 역사로까지 자리잡는다.

단종이 삼촌 세조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가게 되면서 그의 부인 정순왕후 송씨 역시 궁에서 쫓겨나게 된다. 갈곳을 잃은 그는 도성 근처 낙산으로 들어와 청룡사 부근에 초가를 짓고 살았다 한다.

얼마 후 단종이 죽자, 정순왕후는 매일같이 낙산 꼭대기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지아비의 명복을 빌었다. 이 안타까운 사연은 마을 사람들을 통해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고, 그 때부터 낙산 동쪽 봉우리는 '동쪽을 바라본 봉우리'라는 뜻의 동망봉이 되었다 한다. 후에 이 사연을 들은 영조는 바위에 친필로 동망봉을 새기는 동시에 정순왕후가 머문 터에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 비석을 새워 그를 기리게 했다.

정순왕후의 사연은 마을 곳곳에도 남았다. 단종을 영월로 떠나보내며 이별한 다리는 '영영 건너가 버린 다리'라는 뜻의 영도교(永渡橋)가 되었고, 왕비와 그를 따라 나온 궁녀들이 생계를 위해 천에 물을 들였던 샘은 '자줏빛 물이 나온 샘'이라는 뜻의 '자주동샘(紫芝洞泉)'이 되었다. 또 쫓겨난 왕비를 돕기 위해 마을 여인들이 만든 채소시장은 '여인시장'이 되어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그러나 수세기를 이어온 마을의 사연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위기를 맞는다. 낙산의 화강암은 근대 석조 건물의 좋은 재료가 되었고, 일제는 국영 채석장을 만들어 조선은행, 경성역, 조선총독부 등을 짓는데 사용한다. 동망봉 역시 채석장의 하나가 되어 크게 훼손된다.

하지만 오랜시간 마을을 이어온 사람들은 남은 공간을 활용하며 옛 기억을 이어갔다. 채석장으로 인해 도로가 생기고 인구가 늘어나며 좌우로 나뉜 마을은 옛기억을 더듬어 창신동과 숭인동으로 살려냈다.

또 마을은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도 지난 세월을 지켜냈다. 근대 이후 형성된 골목은 거의 그대로 남았고, 그 덕에 동방봉의 옛 기억부터 근대 도시한옥, 현대 주택의 모습까지 마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처럼 숭인동은 다양한 세월을 겪고, 또 변화를 맞으면서도 골목 안 사연만큼은 차분히 모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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