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악수 대신 칼 내민 우크라 검객…조국에 첫 메달 안겼다
(서울=뉴스1) 정희진 기자 | 2024-07-30 16:49 송고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펜싱 선수 올하 하를란이 29일(현지시간) 파리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땄다.
올림픽 준결승에서 프랑스의 사라 발저에게 패배한 그는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의 최세빈(전남도청)과 맞붙었다. 치열한 접전이 이어진 끝에 그는 15-14로 구릿빛 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가 끝난 후 그는 감격하며 주저앉아 눈물을 보였다. 경기장을 꽉 채운 관중들은 그를 향해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그는 우크라이나 국기 모양 마스크에 입을 맞추며, 카메라를 향해 “사랑하는 우크라이나, 이건 널 위한 거야”라고 말했다.
하를란의 동메달은 파리 올림픽에서 우크라이나가 거머쥔 첫 번째 메달이다.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침공한 후 처음으로 열리는 올림픽에서 거둔 첫 메달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이번 동메달로 그는 우크라이나 역사상 가장 많은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선수가 됐다. 또한, 그는 4개의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최초의 우크라이나 선수가 됐다.
‘국민 검객’으로 불리는 그는 지난해 우크라이나를 넘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러시아 선수와의 ‘악수 거부’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FIE 펜싱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그는 러시아 펜싱 선수 안나 스미르노바와의 경기에서 승리했다. 경기가 끝난 후 스미르노바가 악수하러 다가왔으나, 하를란은 검을 앞으로 내민 채 악수를 거부했다.
펜싱에서 악수는 의무로 규정돼 있고, 이를 거부할 경우 스포츠맨십 위반으로 ‘블랙카드’(실격 명령)을 받는다. 하를란은 끝까지 악수를 거부하며 결국 실격 처리됐다.
그는 당시 “러시아 선수들과 마주할 준비는 돼 있지만 그들과 결코 악수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메달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국가와 가족”이라고 강조했다.
실격으로 인해 하를란은 파리 올림픽 출전에 필요한 세계 랭킹 포인트를 쌓을 기회를 잃었는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그에게 예외적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부여했다. 그는 올림픽 경기 시작 전 “우크라이나를 위해 이번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파리 올림픽에 역대 최소 규모의 선수단을 꾸렸는데, 26개 종목에 140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전쟁이 길어지며 일부 선수들은 집과 훈련장이 파괴됐고, 일부 선수들은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몇몇 선수들은 훈련을 위해 해외로 떠나야 했는데, 하를란 역시 이번 올림픽을 해외에서 준비했다.
하를란은 “조국이 전쟁 중인 가운데 출전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며 “무슨 메달인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건 금메달”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우크라이나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메달을)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사람들과 러시아에 의해 목숨을 잃은 선수들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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