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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야기] 굴곡의 역사를 걸어온 후암동…③골목이 품은 문화주택

후암동 굴곡의 역사는 골목 안에서 8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주택에서도 찾을 수 있다.

1925년 후암동에 조선신궁이 들어선 이후, 이 지역은 일본인들에게 중요한 거주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많은 일본인들이 이주하며 새롭게 대규모 주택단지가 형성되는데, 새로 지은 건물들 대부분은 이른바 '문화주택'으로 지어졌다.

후암동 주택을 연구한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일제가 지었다 하여 일식 주택이라고도 불리기도 하지만 건축학적으로는 '문화주택'이라하는 게 맞다"며 "외관은 서양 건축의 형식을 보이고, (내부에만) 일부 일본인의 방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일본인들의 문화주택으로 이뤄진 후암동은 일제의 항복과 함께 다시 변화를 맞았다. 점령군 자격으로 들어온 미군정이 일본 재산을 모두 적의 재산(Property of enemy)으로 관리하였는데, 그 때부터 '적산가옥'으로 불리게 된다.

그렇게 미군정에 귀속되었던 문화주택은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일반인에게 불하되며 온전한 우리의 '귀속재산'이 된다.

정부 수립 후 문화주택을 이어받은 사람들은 건물을 새로 짓기보단 대부분 문화주택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생활했다. 그리고 7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문화주택이 후암동에 남았다.

일제가 지은 주택이지만 한국인들이 산 기간이 훨씬 긴 문화주택은 이제 근대사를 품은 하나의 역사 공간으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품어온 덕에 후암동엔 젊은 건축가들이 들어와 근대 건축물들을 분석하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도시공감 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는 후암동에 사무실을 내고, 문화주택을 비롯한 오래된 근현대 건물들을 조사해 실측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후암가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준형 도시공감 협동조합 대표는 "골목에 남아있는 목조주택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풍경들이 마음에 들어 후암동에 자리를 잡았다"며 "마을과 동네는 계속 변하기 때문에 '기록해두면 가록도 하나의 그 지역의 역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활동 이유를 밝혔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낡고 오래된 집들은 이렇게 후암동을 알리는 기록으로 남게 되었고, 골목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어주고 있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주거사 측면에서 본다면 후암동은 그러한 역사의 큰 흐름 속의 한 장면을 형성하는 중요한 지역"이라며 "우리의 근대기의 삶을 그대로 담은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고 역사적 가치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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